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렉세이 페트로비치 황태자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* 일설에 의하면 알렉세이가 죽는 순간 표트르는 아들과 화해했다고 한다. 그러면서 표트르는 [[사도세자|아들의 죽음을 슬퍼했다고 한다.]] 이 설에 의하면 이후 표트르의 건강이 조금씩 악화되어 갔다고 한다. * 알렉세이의 사후 [[로마노프 왕조]]는 훗날 [[니콜라이 2세]]가 [[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로마노프|외아들]]의 이름으로 짓기 전까지 '''절대로 황태자의 이름을 알렉세이라고 짓지 않았다.'''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니콜라이의 아들 역시 [[러시아 혁명|참혹한 최후]]를 [[총살|맞이했다]]. * 알렉세이의 동서로서 그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했던 [[카를 6세]]는 [[트라우마]]가 생겼는지, 이후로는 다른 나라의 왕족이 생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을 구명하기 위해 여러모로 힘썼다. [[프리드리히 대왕]]이 왕세자 시절 외가인 [[영국]]으로 도망치려다가 발각되어 아버지 [[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]]에 의해 처형당할 위기에 처하자, "왕족에 대한 재판은 제국 의회에서만 할 수 있다"는 근거를 들며 사형을 막아 프리드리히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도 카를 6세였다. [[분류:체사레비치]][[분류:로마노프 가문]][[분류:1690년 출생]][[분류:1718년 사망]][[분류:옥사한 인물]][[분류:모스크바 출신 인물]][[분류:즉위하지 못한 계승자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